매복마케팅
매복마케팅
태극전사들이 4강 신화를 이룬 2002 FIFA 한·일 월梁?축구대회가 끝나고 온 나라를 붉은 물결로 파도치게 했던 응원 열기도 식어가고 있다. 공식 후원사나 국내 공급업체로 참여했던 기업 뿐 아니라 교묘하게 월드컵에 편승했던 기업들의 광고 및 마케팅 전쟁도 수그러들고 있다. 숨가쁘게 광고를 기획하고 마케팅 이벤트를 준비했던 업체들은 비용의 수십배에서 수백배에 달하는 효과(물론 미실현 이익)를 얻은 것으로 자체평가하고 있다.
매복마케팅(Ambush Marketing)
그렇다면 이번 월드컵은 모든 업체들이 만족하는 윈-윈 게임이었을까. 스스로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왠지 배가 아픈 업체들이 있다. 경쟁업체가이른바 ‘매복 마케팅’(Ambush Marketing)에 의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린 ‘공식’ 업체들이다. 반대로 공식업체도 아니면서 매복작전에 성공, 기대 이상의 전과를 올린 기업들은 기쁨이 두 배일 것이다. 매복 마케팅은 이처럼 대회와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대회 명칭, 로고 등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개별 선수나 응원단을 측면 지원하거나 대회를 연상시키는 광고로 마치 무슨 관계가 있는 것처럼 숨기는 마케팅 기법이다.
공식업체의 광고마케팅 활동
한·일 월드컵 대회 공식 후원사는 국내 현대자동차와 KTF를 비롯해 아디다스, 코카콜라, 마스터카드, 맥도널드, 야후, JVC 등 업종별 15개 업체. 이들 업체는 수천만달러를 FIFA에 내고 각종 물품을 지원하는 대신 광고 독점권과 경기장내 광고판 설치권 등을 따냈다. 또 한국 내에서만 월드컵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지역 공급업체로 현대해상화재, KCC 등 6개 업체가 있다.
우선 공식업체 성적표. 후원금 뿐 아니라 한·일 월드컵 조직위에 차량 수백대를 제공한 현대자동차는 굿 윌볼 로드쇼나 미니 축구대회 등을 열고 한·일 양국 20개 경기장에 2개씩의 광고판을 설치했다.
한국팀이 4강에 진출, 50억달러로 예상했던 월드컵 마케팅 효과를 80억달러로 상향조정했다. KT와 KTF도 ‘KTF=코리아 팀 파이팅’ TV광고와 경기장 광고판 노출 등을 통한 단순효과만 1조 2천억원에 달하는 등 전체적으로 5조원에 달하는 성과를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후원금이 50억원 안팎이었던 국내 공급업체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후원금을 깎아 월드컵에 동참한 경우가 많았지만 엄청난 결과에 희색이 만면이다.
매복마케팅 업체의 광고마케팅 활동
이번 대회에서 매복 마케팅으로 최고의 대박을 터뜨린 업체는 SK텔레콤. 용품 지원비 등 50억원으로 붉은 악마를 후원, 비더레즈(Be the Reds) 티셔츠와 전국민의 응원구호가 된 ‘오 필승 코리아’, 또 ‘대~한민국’과 엇박자 박수 광고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물론 광고 어느 곳에도 ‘월드컵’이란 말은 없으며 처음 나눠줬던 비더레즈 티셔츠에 ‘스피드 011’만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이 티셔츠는 유사상품까지 등장, 1천만장이 팔려나갔다.
삼성카드도 일찌감치 거스 히딩크 감독을 광고모델로 점찍어둔 덕에 예상치 못한 재미를 봤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카피는 월드컵 16강 진출을 마치 예언한 것처럼 비쳐졌고, 4강에 진출할 때까지 히딩크 특유의 ‘어퍼컷’ 골·승리 세레모니와 함께 “당신의 능력을 한번 더 보여주세요”가 유행어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대우차는 16강 진출조차 꿈이었던 지난해 5월, 8강 마케팅을 벌여 그 해 5~6월 누비라Ⅱ를 산 고객 2천 763명에게 100만원씩 27억 6천만원을 지급했으나, 이를 보험금 2억원으로 틀어막는 대신 판매 증가 및 막대한 광고 효과를 올렸다.
또 ‘월드축제’(온세통신), ‘대한민국 파이팅, 월드콘 파이팅’(롯데제과), “월드컵 후원사에 보험을 들었다”(농심), ‘가족사랑 축구사랑 파워슈팅 페스티벌’(삼성전자), ‘힘내라! 대한민국! 으랏차차~16강’(비씨카드), “한국이 프랑스를 5대0으로 꺾고...”(박카스) 등도 모두 월드컵을 간접 활용한, 적어도 연상시키는 이벤트나 CF들이다.
외국업체들의 광고마케팅 활동
국내에서 이처럼 업체간 경쟁이 과열된 것은 초유의 일이지만 숙적 관계인 외국업체들은 월드컵, 올림픽 등 대회가 열릴 때마다 사활을 건다.
매복 마케팅의 최고수는 나이키. 이 회사는 FIFA 후원사가 된 적이 한번도 없지만 월드컵 때마다 매복 마케팅으로 공식 후원사인 아디다스에 버금가는 효과를 누려왔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초반부터 신바람을 냈다. 후원했던 한국팀이 1승, 16강, 8강, 4강 등 내내 바람을 일으키는 바람에 대표팀 유니폼만 15만장을 팔았고, 역시 이변을 연출한 미국팀도 후원했다.
반면 아디다스는 세계 최강 프랑스가 초반 탈락해 울상을 지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국, 사우디아라비아가 3패로 짐을 싼데 이어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일본도 8강 진출에 실패, 속앓이를 했다.
두 업체의 희비는 나이키가 후원한 브라질과 아디다스가 후원한 독일이 결승에서 만나면서 결정적으로 엇갈렸다. 4년전인 98년 프랑스 대회에서 아디다스는 프랑스를, 나이키는 브라질을 후원했고 승리의 여신은 아디다스 편에 있었지만 올해에는 처지가 뒤바뀌었다.
반면 공식업체인 코카콜라의 저격수로 나선 펩시콜라의 매복작전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아일랜드 세븐업이 아일랜드팀 주장 로이킨과 광고 계약을 맺었으나 로이킨이 감독과의 불화로 돌연 귀국, 월드컵 경기에서 그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던 것. 프랑스 티에리 앙리를 광고모델로 기용한 르노나 이탈리아 프란체스코 토티를 모델로 고른 피아트도 김이 샜다.
매복마케팅의 후유증
‘돈 안 들이는 얌체 짓’인 매복 마케팅에 대한 비난과 이에 따른 후유증도 적지 않다.
공식 후원업체들은 “엄청난 비용으로 스폰서 자격을 따낸 만큼 독점적 권리를 보호해야 하며 무임승차하려는 기업을 철저히 감시하고 제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애교로 봐주기에는 매복 마케팅이 ‘너무 뻔뻔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불만도 나온다.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을 동원하고 합법을 가장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상도의 문제도 제기한다.
적어도 “매복 마케팅이 적절히 통제되지 않으면 스폰서 제도의 근간이 흔들려 결과적으로 스포츠와 기업 모두 피해를 보게 된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FIFA가 매복 마케팅을 편 한국기업에 대해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을 내기로 한 것을 취하하자, 거꾸로 공식업체가 FIF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피장파장. 만일 이번 월드컵과 똑같은 결과가 예상되는 월드컵이 다시한번 열린다고 가정해 보자. 공식 후원업체가 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벌일 것이다.
그러면 이번 대회 공식 후원업체가 스폰서십 획득에 실패하면 매복 마케팅을 포기할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게 기업 생리이다. 축구와 마찬가지로 기업도 골키퍼가 있어도 골을 넣어야 이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