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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보다 사람대접!

와빠시 2007. 6. 25. 22:34
밥 한 그릇보다 사람대접!

 

저는 21살에 수도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재미있고 행복한 25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수도원에 있으나 나와 있으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지내면 그곳이 임의 텃밭이니 참 행복하겠다 싶었습니다.

정든 수도원을 나와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인천 송현동 달동네에 살면서 오랜 교도소 생활을 하고 출소했는데도 갈 곳 조차 없는 몇 명의 형제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출소한 형제들에게 밥도 잘 해 먹이고 싶고, 배고픈 분들에게 필요한 것이 한 그릇의 밥보다는 사람대접이라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아주 조그마한 식당을 열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를 내어놓은 소년처럼 저도 가진 것을 전부 털어서 마련한 것이 큰 탁자 하나에 비집고 앉으면 여섯 분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작은 식당입니다.

하느님의 대사들을 위한 민들레 국수집은 인천 동구 화수동 골목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문을 연 민들레국수집에는 한 달 평균 2500~3000여명의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손님들의 대부분은 노숙자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찾아오신 손님들은 어느 누구도 음식 값을 내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보내신 귀한 손님이기 때문입니다.

식당 이름은 국수집이지만 국수는 없습니다. 며칠씩 끼니를 거른 가난한 사람들이 국수로는 배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식당 문을 연지 한 달도 채 안 돼서 밥집으로 바꿨습니다. 배고픈 손님들이 장마철과 겨울철이면 더 많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열 분이 식탁에 앉을 수 있도록 식당을 늘였습니다. 

매일같이 다섯 종류 이상의 반찬과 밥과 국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게다가 뷔페식으로 원하는 만큼 양껏 먹을 수 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는 언제든지 두세 번 와도 대환영입니다. 하느님이 보내주신 손님들과 가족처럼 풋고추 하나라도 나눠먹으며 배고픈 노숙자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버림받고 배고픈 이웃에게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밥 주고, 술 사주고, 방 얻어 재워주고, 싸우지 말라고 따로따로 살게 해주고, 철이 들 때까지 기다려 줍니다. 사람은 서서히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손님들 대부분이 노숙자나 빈민들이다 보니 술을 마시고 와서 행패를 부리거나, 오며 가며 지나가는 동네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일도 많았습니다. 절망스러운 상황에 몸과 마음이 찌들어 아주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싸웁니다.

그런데 잔소리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감싸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착한 양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 손님들이 스스로 일어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을 누립니다.

 

 


베푸는 것이라고, 공짜라고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됩니다. 식당을 열기 전에 한식조리 학원에 석 달을 다니면서 요리 준비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무료급식소라는 표시가 안 나도록 정식 음식점 허가를 냈습니다.

간판도 표시나지 않도록 흰색 바탕에 노란 글씨로 민들레국수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민들레 국수집에 오는 모든 손님을 VIP로 섬깁니다. 이름을 외우는 건 기본입니다. 치아가 없는 할머니에게는 가위로 먹기 좋게 잘라드리고, 거동이 불편한 손님이 오면 옆에 앉아 음식 먹는 걸 거들어 줍니다.

그리고 새로운 손님이 올 때마다 화이트보드에 이름을 적고 손님의 입맛을 기억해 둡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손님인데, 세상에 자기 자식 이름 못 외우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나누겠다는 말은 영원히 나누지 않겠다는 거짓말입니다. 진짜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은 작은 것부터 나눌 줄 압니다.

하루 종일 폐품을 모아서 번 돈으로 파 한 단을 사서 민들레 국수집에 내어 놓는 할머니, 풋고추 몇 개를 사서 한 개씩 나눠 먹는 노숙자, 막노동을 해서 번 돈의 10%를 선뜻 내어 놓는 사무엘 형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의 10%를 후원금으로 내어놓는 민들레국수집 앞의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 세차를 해서 받은 돈을 선뜻 후원금으로 내어놓는 할아버지처럼 작은 것도 나누어 가질 줄 아는 사람들이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입니다.

나눔과 사랑을 떼어놓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이란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고, 관심과 배려이고, 기다려주는 것이고, 생명을 나누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 생명을 내어 주는 것만큼 어려운 게 또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생명까지 다 내어줘도 아깝지 않는 법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나눈다면 어느 누가 아까워하겠습니까. 더 못 줘서 안타까워 할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눠야 합니다.

동정과 사랑의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동정 받은 대상과 사랑을 받은 대상이 자라나는 모습은 확연히 다릅니다. 동정 받은 사람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날이 갈수록 죽어가지만 사랑 받은 사람은 점점 생기가 돌고 스스로 살아납니다. 동정은 사람이 누구나 받기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선심이라도 쓰는 냥 생색을 내며 동정하고 싶어 합니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엄마가 아기 밥 먹일 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쫓아가면서 먹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기는 엄마가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는지 압니다. 아기가 엄마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아기를 사랑하니까 귀하게 여기니까 쫓아다니면서 밥 먹이는 것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은 배고픈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합니다. 하느님이 보내주신 귀한 손님을 대접합니다. 밥을 먹고 힘이 생겨야 술도 안 먹고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귀한 손님들을 가르치려 잔소리 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새록새록 살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보내주시는 귀한 손님들이 언제라도 배가 고프면 올 수 있는 임의 텃밭으로 가꾸고 싶습니다.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에서 펴낸 "땅끝까지"라는 잡지 32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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